이민아 | 기자 작성일 2026년 03월 26일
대학가 주점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부어라 마셔라' 음주 문화가 대학 생활의 낭만처럼 여겨졌던 시절은 갔다. 캠퍼스에 봄기운이 완연해지며 대면 행사가 활발해진 3월이지만, 주점 테이블 위에 술병이 쌓이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신촌 대학가에서 5년째 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신입생 환영회다, 개강총회다 해서 단체 손님이 몰려도 예전처럼 술이 나가질 않아요. 가게에 10개 테이블이 있으면 그중 7개 테이블이 콜라만 마셔요"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8명이 와도 겨우 한두 병 먹는 수준"
1997년부터 안암동에서 '이가네 곱창'을 운영해 온 이재홍 씨는 "예전에는 1인당 최소 한 병 반씩은 마셨는데, 요즘은 평균으로 따지면 한두 잔 정도 마시는 수준"이라며 "술 매출은 예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었고, 곱창 매출도 4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신촌 대학가에서 27년째 주점 '연대포'를 운영하고 있는 장홍복 씨는 "8명이 와도 한두 병 겨우 먹고 가는 수준"이라며 영업시간을 새벽 4~5시에서 밤 11시~자정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NH농협은행이 1,200만여 명의 소비 데이터 2억6,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주점 카드 결제 건수는 최근 1년 동안 2023년 대비 76.6% 수준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주점 가맹점 수 역시 3년 전보다 19.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서울 지역 호프집·간이주점 점포 수는 2023년 1만6,512개에서 2024년 1만5,312개, 2025년 1만4,200개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과음 후 숙취로 하루 날리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
대학생들은 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세대 24학번 김모(22) 씨는 "술을 진탕 마시고 다음 날 숙취로 하루를 날리는 게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며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구식 문화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고려대 24학번 최모(23) 씨는 "선배들로부터 막걸리를 사발에 담아 돌려 마시는 '사발식'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요즘은 그런 문화가 거의 없다"며 "고연전 같은 큰 행사 뒤풀이도 술을 많이 마시기보다는 이벤트를 즐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25학번 임모(21) 씨도 "술을 잘 못 마시기도 하지만, 많이 마셔야 한다는 분위기 자체가 없어서 제로 콜라나 무알코올 하이볼을 주로 마신다"며 "친구들과는 술집보다 카페나 코인노래방, 보드게임카페를 더 자주 간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20대(만 19세 포함)의 하루 평균 주류 섭취량은 64.8g으로, 1년 전 95.5g에서 30% 이상 급감했다. 이는 60대의 하루 평균 섭취량인 66.8g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와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자리잡고 있다. 소버 큐리어스는 건강한 삶을 위해 의도적으로 음주를 줄이거나 멀리하는 태도를 뜻하며,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헬시 플레저도 코로나19 이후 주목받고 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20대는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라 음주처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을 굳이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대학가 주점도 예전처럼 양과 가격으로 승부하는 방식만으로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